팩트체크와 나

나는 정보의 정확성을 중요시한다. 잘못된 정보가 퍼지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성격이다. 이 글은 내가 정보를 검증하고 지적하며 보낸 시간에 대한 것이고, 수많은 오정보들에 대한 감상문이다.

오늘도 쓰레기를 청소한다

어떤 주제로 해왔는가

가능하다면 내가 접하는 모든 정보를 검증하고 싶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우선 내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내 전문성이 그렇게 넓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밍, 그 중에서도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꼭 내 전공 분야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참인지 거짓인지 단순한 검색이나 독해만으로 판별할 수 있는 정보의 경우 그냥 검색해서 읽으면 된다.

  • 해외 도시 전설이 국내로 수입된 경우 시간차가 있기 때문에 영어로 검색하면 누가 이미 팩트체크를 해둔 경우가 많다.
  • 법률 관련 사항의 경우 내용 자체는 모두 공개되어 있다. 어떤 행위가 이론상 불법인지 여부 자체는 명백한 경우가 꽤 있다.

잡다하게 여러 가지를 읽다 보면 새로운 정보를 접할 때 이따금 "금시초문인데?" 하는 느낌을 받는다. 단순히 모르는 사실임을 넘어, 작성자가 이를 알게 되었을 정도로 잘 알려져있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럴 때 과연 사실인지 확인해 보면 대부분 오정보다.

대상은 무엇인가

입문자들이 전문 지식에 대해 글을 쓰면 높은 확률로 오정보가 된다. 물론 나는 토끼를 잡을 때도 평등하게 최선을 다한다.

보통 이런 분들은 정보를 전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공부 기록용으로 쓰시는 것이기 때문에 뭐가 틀렸는지 알려드리면 좋아하신다. 중요하지 않은 결점은 웬만하면 무시하고, 교정하면 좋은 오개념들 위주로만 댓글을 달아 드리고 있다. 내가 아는 선에서 대부분 답변 가능해서 별로 큰 일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건 대외적으로 신뢰도가 높은 출처에서 나오는 오정보다. 이런 곳은 정보의 상류(upstream)기 때문에, 이런 곳이 오염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료로 공부한 사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오정보가 인터넷의 정론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큰 곳을 잡아야 하며, 검증 후에 그 내용을 널리 공표하는 것이 좋다. 정보를 알리는 목적으로 트위터를 이용하고 있고, 이제부터는 블로그에도 좀 정리해서 적으려고 한다.

기억에 남는 팩트체크 사례들을 꼽자면

  • 국내 모 유명 블로그의 C/C++ 관련 포스트 다수가 전혀 검증되지 않은 오개념인 것
  • 국내 자바스크립트 관련 베스트셀러 두 권이 데이터 타입, 실행 콘텍스트 관련하여 공통적으로 오개념으로 가득한 것
  • 정보처리기사 문제로 출제되어 유명해진 "톰 마릴은 '기술적 은어'라는 뜻으로 프로토콜이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내용이 국내 교재의 오래된 착오에서 비롯된 허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 자바스크립트 관련 정보를 정리하는 해외 유명 깃허브 저장소에서 데이터 타입 관련된 질문 자체가 오류여서 잘못된 정보를 제시하는 답변들을 모아놓은 것
  • "미성년자에게 무알코올 맥주를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다"라는 인식이 식약처의 허위 홍보라는 것

실망감

틀린 정보를 찾는다는 건 시간이 꽤 깨지는 일이다. 단순히 타인이 제시한 근거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사실 관계가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는 방법으로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평소라면 굳이 신경 쓰지 않았을 지식까지 조사해야 하고, 상대방이 제대로 결론내는 데 실패한 문제에 대해 답을 내놓아야 한다. 심지어는 오개념의 출처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도서 등을 구입하기도 한다. 그냥 내가 안 믿고 넘어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런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동체에 기여하려는 것이다. 신뢰받는 출처를 신뢰할 만하게 유지하고, 올바른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지식 격차를 조금이나마 줄인다. 오정보가 필수 지식으로 호도되고 있었다면 이만한 해악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노력을 다하여 "이 글이 좀 잘못되었습니다." 하고 전달했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오류를 인정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지적을 무시하는 것은 일상이고, 지적 댓글을 삭제해서 해결하려는 경우도 많다.

나도 틀린 말을 꽤 한다. 대부분은 내가 스스로 알아채고 정정하는 편이지만, 다른 분이 지적해 주셔서 고친 경험도 꽤 있다. 말을 많이 하면 틀린 말도 많이 나온다.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정정은 해야 한다. 성심성의껏 오류를 고치는 것이 본인의 글을 믿고 읽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다. 특히 정보 공유를 통해 주목을 받거나 금전적 이득을 얻거나 업무의 일환인 경우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루치 공부 내용 정리하는 입문자들이 가장 성실하게 고치고, 누구보다 정확성을 신경 써야 하는 사람들이 주로 지적을 무시한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고민을 해 본 결과 몇 가지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 정보에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정보 공유로 얻는 명성·이득에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하기에 숨기고 싶어 한다.
  • 본인의 지식에 대해 과신하고 있거나 지적하는 사람을 과소평가하고 있어, 유의미한 지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 많은 지식을 공유하는 사람일수록 개별 지식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도가 떨어지기에, 지적을 이해할 능력이 애초에 없다.
  • 정보의 정정을 추가적인 업무로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무시하고 싶어 한다.
  • 단순히 지적당하는 것이 기분이 나쁘다.

오정보를 대하는 자세

좀 유명한 출처에 팩트체크를 할 때마다 무시 및 삭제당하는 게 일상이다보니, 나도 어쩔 수 없이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외부에 보이지 않게 메일이나 DM 같은 수단을 써서 소통을 시도하기도 하고, 내 실명과 이력을 밝혀 진정성과 권위를 어필하기도 하고, 입문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된 지식을 모두 자세히 설명해 주기도 한다. 이렇게 하느라 내가 쓰는 시간도 다시 불어난다.

그래도 무시당한다. 지식 공유자 자신이 고치지 않겠다면 내가 강제할 방법은 없다. 무의미한 저항을 멈추고 그냥 도시전설이 넘쳐나는 세상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명확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겠다.

커뮤니티가 이 문제에 대해 더 신경 쓰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오정보가 정론이 되어 있다. 오정보 출처 자체를 교정해서 옳은 정보가 전파되도록 하는 일은, 내가 항상 시도하고 있지만, 거의 불가능했다. 오정보를 막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콘텐츠로 오정보의 전파력을 이기는 수밖에 없다.

모두가 좀 더 정보를 검증하려 노력하고, 팩트체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정보 공유자의 책임을 강조하며, 정정 책임을 다하지 않는 출처는 추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이 어떤 자료를 읽고 공부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라면 많은 도시전설이 빠르게 수명을 다하고 정론의 지위를 잃을 것으로 믿는다.

여기까지가 내가 수 년 동안 경험하며 나누고 싶었던 감상이다. 이 글이 전파되는 정보의 신뢰성에 대해 경각심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면 기쁘겠다.